사순 제5주일2023년년도 삼월 26낮
신약에서 바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 감정은 복잡합니다.. 우선 그의 영적 기량을 따르기가 어렵다고 느낍니다.. 기껏해야 하나1000미터 높이의 산을 올라간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합니다. 8일천 미터 이상 14모든 산을 다 오른 산전문가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반면에 바울이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가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만큼 신비롭고 강력합니다., 또는 호기심이 지속.
이 느낌은 로마서를 읽을수록 커집니다.. 오늘의 설교 본문(로마 8:6-11)에서 몇 가지 단어만 지적할 테니 어떤 느낌이 드는지 확인하세요.. 육신의 생각, 정신적인 생각, 신과 적, 하나님의 법, 신의 영, 그리스도의 영, 시체 등. 이 말은 로마서 8일전체 장의 맥락과 연결됩니다.. 로마 8:1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비난‘없다고 합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 8일챕터의 마지막 부분 39구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 세상의 어떤 권세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생명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좋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사건은 복음의 본질입니다.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은 이 복음의 핵심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말해줄게.
육신의 생각
폴은 ‘육신의 생각‘수업 ‘정신적인 생각‘공유 및 설명. 6내 말을 들어.
육신의 마음은 죽었다(θάνατος)이요영의 생각이 생명이다(ζωㅇ)그리고 평화(이자형ㅇρήνη)이니라.
육신의 생각 육신의 본능, 즉, 성욕, 식욕, 사회적 성취감 등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사람들의 부도덕한 생각과 행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게 아니야.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감각은 당신을 삶의 중심으로 만드는 삶의 방식~을 참고하여. 유대인들에게는 그러한 생활 방식이 법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제정한 규범이자 시행규칙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키는 오경은 율법이라고도 합니다.. 이 다섯 권의 책에는 많은 법과 규범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밖으로 12이 장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자세한 규칙이 있습니다., 이동 21주인과 종의 관계, 공격에 대한 규칙이 있습니다.. 22이 장에는 보상에 관한 조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형사소송법이나 가족법과 유사한 내용을 모세오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례와 규범을 지키는 것이 당시 유대 민족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었습니다.. 의롭고 선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기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뜻밖에도 바울은 그러한 생활 방식을 죽음을 가져오는 육신의 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바울의 비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개적으로 말하기, 법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나는 지킬 수 없다?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바울은 율법 중심의 삶은 사망이라고 말했습니까? 7성전에 오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바울은 율법 자체의 전통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법적 전통을 법의 지배라는 단어로 대체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누구도 법치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바울은 인간의 생명이 율법의 지배를 통해서는 온전해질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법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그 법을 지키려고 아무리 애써도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법‘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할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하나Joe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세계의 대부분의 문명 국가들은 민주 공화국을 열망합니다.. 우리가 김일성 독재국가로 여기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그들의 공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원래 법 그것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더 나아가 조작될 수 있습니다.. 금전적 수단을 가진 반사회적 피고인들이 온전한 사법적 대우를 받는 변호사를 고용하기 위해 큰 돈을 쓰는 이유를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검찰의 검찰 독점은 폐지되어야 하는가?,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의 전환이 필요한가?, 대통령제가 아닌 의회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법이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방증이다.. 바울의 말을 바꾸어 말하면 율법은 생명에 양보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법적,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다.. 우리는 사회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고등 교육, 기술 및 경력을 통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요즘은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서 세계적인 스타들이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1년에 100억 이상 버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말 그대로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삶을 서로 부러워합니다..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설교를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멋지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생활 조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도 없고 복종할 수도 없다는 바울의 통찰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됩니다.. 천박하게 표현하자면 사람은 배부른 돼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왜 이게?
신의 이미지
그 대답은 인간은 생명체 중에서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만족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여기에 가난에서 벗어나 극적인 성공을 이룬 기업가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성공한 교수도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희망이 가득합니다.. 당신이 성공하는 한,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매우 행복 할 것 같아요. 일단 거기에 도달하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 높은 지위는 사람에게 마약과 같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당신의 삶을 살며 여러 가지 이유로 당신은 어느 시점에서 내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은퇴 후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씀 아닙니까?. 어떤 경우에는 성격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정욕에 빠지거나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 겉으로는 여전히 고귀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는 실제 교회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요?.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친구가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목사 50나는 십대 초반이고 괜찮은 사람입니다.. 예배 전 예배와 찬양 모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설교의 시작은 비문의 이야기. 그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비문을 나열하고 그리스도인이 비문을 가져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영상에서 저는 예배를 일종의 종교문화로 취급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정직하고 세상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나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잠시 동안 종교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는 있지만 영혼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 성장, 율법주의적 종교 관행, 권위주의적 제도에 지친 일부 기독교인들은 자연주의적 영성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숲을 찾아 강과 바다를 찾아. 농사로 돌아가거나 마을로 돌아가다. 자연주의적 영성이 매력적이며 창조론에 근거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의미 있는 삶.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자연주의적 영성은 기껏해야 가짜입니다.. 모조품도 모조품입니다.. 진짜로 80% 근접 모조품이라면 80%가짜에 비해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진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모조품에 만족할 것이지만, 진짜를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가짜에 목숨을 걸면 죽는다..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나요?? Paul은 내가 아니라 극단적입니다.. 그는 현재 주류 유대교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지만 이제 당신은 위조품에 만족합니다..
자연주의 영성은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지만 기독교 영성의 기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연은 아무리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할지라도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며 덧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들과 딸을 생각하십시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얼마나 예쁘고 달콤하고 믿음직스러운지? 손주를 둔다면 더욱 그렇다.. 이 아이들은 곧 늙고, 아프고, 골치 아프고, 삶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사랑의 힘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얼마나 많은 실망이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버그투성이. 인식과 판단의 오류가 자주 발생. 감정도 요동친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우리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멸망했습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창문 3:17) 설명, 폴 도롬 8:22~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함께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음을 압니다..”고백했다. 당신은 동의합니까?
정신적인 생각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구원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주목하고 칭찬하는 정도다.. 미술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걸작을 보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있을 뿐,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폴 ‘정신적인 생각‘변화를 요구하다. 귀신 9구절이 말하는 것처럼 ‘신의 영‘(Πνεῦμα Θεοῦ)관심 ‘그리스도의 영‘(Πνεῦμα Χριστοῦ)보지 못하다.
‘영‘표현에 놀라지 마세요. ‘정신적인‘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의 생각‘함께 살지 않는다. 생각(영혼)당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스도의 영‘이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약속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오직 그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안심하고, 의심하지 말고 집중하세요.. 먹는 음식이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사람의 생각이 사람이다..
끝나지 않는 경쟁에서 떨어질까 봐,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족이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는 우리의 삶에 바울의 말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신이 그 단어에서 빛을 느낄 때, 당신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문제는 빛을 느끼는지. 그래요 11말씀의 내용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에도 생기를 주시리라.
11단락에 중복 문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보지 못하다. 그들은 단지 창조주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지만 예수님을 살리신 분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죽을 몸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이 되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와 하나가 되다, 그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삼으면 우리는 살고 결국 죽음으로 끝날 것이 확실합니까??
이 시점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가장 중요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신학적 개념 중 하나를 고려해야 합니다.. 종말론적 삶이다.. 사도신경 마지막 문단에서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사오니.’문장이 나온다. 이 구절에 언급된 몸의 부활은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해 결국 다시 산다는 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투덜거릴지 모르겠어. 이러한 불평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종말은 창조와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삶이 여기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운명의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은 탄생과 동시적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아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체험했다면 이미 종말론적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폴 10성전에서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영이 산다는 표현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생명을 온전하게 하실 하나님이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죽을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인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즉, 품위 있고 고귀한 인간이 됨으로써 이름을 떨치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라.. 그것보다 6바울이 이 구절에서 강조하듯이 생명과 평강이 생명에 절대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국가대표 역도 선수인 맏형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몇몇 폭력적인 친구들에게 놀림과 협박을 당하던 중학생에게 나타난 장면과 흡사하다.. 현장 등장만으로도 난처한 상황 해결 ‘국립대학교‘ 형은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