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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대전 이자람 판소리 개인적 기록 (빛나는 여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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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많은 비가 내린 뒤 금요일 대전은 조금 놀랄 정도로 쾌청한 하루였다.
누가 대전을 노잼의 도시라고 했느냐는 듯 이번 주에는 많은 여름 축제와 행사가 이어진다.
그 중 하나로 8월 12일(금)~8월 14일(일) 이어지는 ‘알록달록 여름축제’가 있었다.

판소리 이자람.이자람의 공연은 예전에 우연히 인연이 닿아 한 번 본 적이 있다.
혹시 기록해놨을까? 아, 안 했어.아쉽다.
그때는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로 대체한 공연이었는데 순간순간의 감정을 듣는 게 너무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특히 초반 식사 장면을 아주 맛있게 묘사한 기억이 난다.

7시 40분이 지나 야외 공연장에 도착하자 곧 재연을 시작하는 오페라 안드로메다 관련 홍보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냥 홍보가 아니라 유명한 곡을 몇 곡 정도 미리보기로 불렀던 것. 꽤 기억에 남았던 ‘인생이 널 속여도’를 다시 들을 수 있어 선물을 받은 듯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우연한 만남은 정말 기쁘다.
그 공연을 본 지 꽤 됐지만 몇몇 장면들이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지만 안드로메↗다~안드로메↗다~라는 초반 노래는 아직도 훅송처럼 흥얼거리곤 한다.
안드로메다~ 안드로메다~ 아무튼 메인은 이자람 공연이니까 여기까지.

오랜만에 속으로 기뻤다

8시가 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야외 공연은 정말 드물게 가봤는데 보통 뮤지컬이나 연극 등을 보러 가면 극이 시작되기 직전에 객석과 무대의 불빛이 캄캄하게 꺼짐으로써 제4의 벽을 만들어내는 반면 오늘은 내 세상 속으로 극이 들어오는 느낌이어서 새삼 신선했다.
입장과 거의 동시에 봄여름가을겨울을 노래하는 판소리가 시작됐다.
대체로 춘하추동의 아름다움과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곡이었으나 옛말이 많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조금 낯설어 주변 사람들도 살짝 몸을 뒤집었다.

사실 사계절 관련 노래는 판소리를 시작할 때 흔히 하는 관례 같은 곡 같았다.
웃으며 자기소개를 해주셨고 본격적인 본 무대가 시작됐다.
창작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의 일단이었는데 갑자기 기타리스트가 들어와 상당히 당황했다.
아니, 판소리랑 기타라고? 신기한 조합이었다.
간단한 배경을 설명해주신 후 곡이 시작됐다.
고국에서 수십 년 전 이민 온 이방인 부부인 오메로와 라살라, 그리고 그 고국에서 쿠테타로하야한 전 대통령이 먼 스위스에서 서로를 만난 뒤의 이야기였다.
전에 봤을 때도 그랬지만 이 사람 소리꾼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음식 묘사가 정말 맛있고 즐겁다.
오메로가 오랜만에 먹는 맛있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바쁘게 썰어 먹으니 남은 게 아깝다.
천천히 싹… 쓱…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누구나 웃기 시작했다.
온갖 효과음과 강약 조절에 이야기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들어올린 놓고 노는 모습에 저절로 어깨가 떨렸다.
놀랐다.
오로지 활짝 열렸다 부러졌다 손에 쥐어졌다 하는 부채 하나뿐. 아무런 소품도, 의상도, 배경도 없는 곳에서 몸짓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쏟아내며 관객들을 장악하는 모습이 마치 마임 같기도 하고 독신연극 같기도 하다.
작은 한 사람인데도 굴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오메로도 되고 늙고 아파 권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관록 있는 대통령이 되기도 하는 게 신기했다.
아니, 혼잣집이라고 하기에는 고수가 외로워.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추임새와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맞는 북소리 등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판소리는 뭐랄까 소설이나 연극으로 표현했다면 몇 줄이고 몇 장면만으로 휙 지나가는 장면을 세밀하고 속삭이듯 묘사하는 것이 재미있는 특징인 것 같다.
그 자세한 묘사는 사실 극의 진행과는 큰 관련이 없지만 각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다소 엇갈리는 장면의 디테일함을 끝까지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어 보였다.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 춘향전도 그렇다.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변사토를 쫓아낸 뒤 아무것도 모른 척 춘향을 부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해 동네 과부들이 달려들었다.
한마디로 끝나는 이야기를 판소리는 뻔뻔하고 예쁜 과부 이야기를 잘하는 기골이 장대한 과부의 뽕나무를 들고 밭에 매달려 달려온 과부 하나를 언급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 안에 나온 할머니의 과부 묘사는 어떤가. 구김이 가득하고 화가 나서 눈썹이 위로 올라간데다 빈틈없는 사람을 바짝 가는 강인하고 욕을 잘하는 무서운 할머니의 모습을 얼마나 자세히 묘사했는지, 또 그 눈빛과 몸짓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정말 한순간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 판소리의 매력은 어떤 이야기의 순간순간을 관객이 빠져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옛말로 진행된 춘향전은 거의 30%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공연이 진행된 스토리가 단순하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 재미있었다.
더웠지만 밤바람이 살랑살랑 좋았다.
내일 공연도 즐겁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사진에서는 많이 작아 보이지 않아? 실제로는 무대가 꽉 찬 느낌이었다.